한국퀴어영화제 리뷰 KQFF REVIEW


[데일리 뉴스]젠더를 비트는 퀴어의 신체활동, 춤

젠더를 비트는 퀴어의 신체활동, 춤

오윤주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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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볼룸하우스>와 <아더랜드>는 네덜란드 최초 볼룸클럽 설립자 엠버와 보깅(Vouging) 댄서 엘빈에 관한 다큐멘터리로, 그들을 통해 보깅 문화와 그 공동체를 들여다본다. 보그 댄스는 1980년대 뉴욕 할렘의 볼룸(ballroom) 씬에서 흑인 및 라틴계 성소수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보깅은 단지 춤 동작이 아니라, 먹기나 걷기처럼 하나의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보깅에는 여러 하위 카테고리가 있으며 보그 펨에는 캣워크, 덕 워크, 손동작, 딥 등의 동작이 있다. 보그 잡지 모델처럼 부자연스러운 동작이 특징이다.

<아더랜드>의 주인공 엘빈은 캐리비안 출신의 퀴어다. 작은 섬에서는 모든 것이 터부였다. 뉴욕에 다녀온 친구를 통해 보깅 문화에 눈뜨기 시작한 엘빈은 그것이 자신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혼자 네덜란드로 갔을 때 그의 나이는 열아홉이었다. 보깅 크루의 막내인 엘빈은 그곳을 자신의 집이자 가족으로 여긴다. 그곳에서 ‘엄마(mother)’라고 불리는 엠버는 하우스 빈야드의 마더이며, 네덜란드 볼룸씬의 개척자다. 진짜 가족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성소수자들은 그곳에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꾸리고 그들만의 마더를 찾는다. 그들에게 볼룸은 답답한 현실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다. 또한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다.

<마마 볼룸하우스> 속 엠버는 매우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미국 가정에서 자랐다. 엄마를 닮아 창조적인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녀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내면을 표출하기 위한 창구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그녀의 아빠는 스토킹, 사생활 침해, 외출금지까지 불사하며 엠버의 날개를 꺾으려 애썼다. 엄마의 재혼으로 암스테르담으로 오게 된 엠버는 보깅에 빠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창구를 찾아 헤맸던 그녀에게, 보깅은 가장 적합한 도구였다.

엠버의 부모님은 여전히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엠버는 자신이 긍정적인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믿는다. 네덜란드의 거대한 볼룸 씬을 이끄는 엠버의 어깨는 무겁다. 보깅은 젠더를 놀이로 삼는 법을 알려주었다. 여성성과 남성성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던 그녀에게, 둘 다 가져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보깅을 하는 동안 엠버는 가장 남성적인, 동시에 가장 여성적인 누군가가 된다. 결핍과 불안으로 가득한 이들도 볼룸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 <아더랜드>의 엘빈은 보깅을 하며 자신의 가장 ‘남성적인’ 면을 보여준 후, 그것을 자신의 가장 ‘여성스러운’ 면으로 비튼다. 엘빈은 과장된 몸짓을 통해 자신 안의 ‘여성성’을 자유롭게 표현해낸다. 그는 훌륭한 ‘트위스터’다. 그는 젠더 규범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엄격한 젠더 이분법을 무너뜨린다. 우리는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퀴어의 신체를 통해 젠더를 비트는 행위는 가장 강력한 퀴어의 정치다.

6월 9일 특별전2의 상영 후에 이어진 Q톡에서는 퀴어 페미니스트 댄서 공동체 ‘루땐’이 함께했다. 양말은 어릴 때부터 발레를 배웠고 오랜 기간 춤을 춰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스젠더 여성에게 요구되는 억압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내면에 계속해서 쌓여왔음을 느꼈다. 어반 댄스 장르를 배우기 시작하며 퀴어로서의 정체성과 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맞물렸다. 양말은 지금 추고 있는 춤이 자신의 퀴어니스를 표출함과 동시에 자신이 수행하고 싶은 페미니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자신의 춤에 대해 ‘젠더리스하다’, 혹은 ‘젠더플루이드한 느낌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굉장한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한다.

이지는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기 이전부터 춤을 춰왔다고 한다. 이지가 퀴어 페미니스트 댄스 씬으로 오기 전, 한국 여성 댄서는 말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항상 들었기에 페미닌한 춤은 늘 포기했었다. 하지만 드랙킹 콘테스트에 섰을 때 처음으로 민소매를 입어보고 그때 찍힌 사진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긍정하기 시작했다. 춤을 출 때는 동작을 수행하고 있는 자신만 존재할 뿐, 젠더가 신경쓰이거나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회의를 통해 자신이 트위스터를 넘어 젠더 블라인드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루시아는 어릴 때부터 춤을 좋아하고 자주 췄다고 한다. 보아와 신화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신화 춤은 추고 싶은 것이고 보아 춤은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남자 춤을 추며 쾌감을 느꼈으나, 요즘은 오히려 페미닌한 춤을 출 때 해방감을 느낀다고 한다.

금개는 <마마 볼룸하우스>의 엠버가 제시카 래빗에 대한 동경을 가졌던 것처럼, 어릴 때부터 디바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러한 욕망이 페미니스트 자아와 충돌하던 즈음, 드랙을 하면서 그 지점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몸을 통해 어떠한 젠더 표현이든 할 수 있으며, 젠더는 결국 역할 수행이고 타고난 정체성과 성별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 속 엠버의 말처럼, 충분히 젠더를 가지고 놀 수 있으며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춤을 통해 깨달았다고 한다. 현재는 볼룸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기존의 볼룸을 그대로 재현하는 차원을 넘어, 퀴어 페미니스트로서 볼룸을 차용해 어떻게 새로운 퀴어 엔터테인먼트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루땐은 단순한 아카데미보다는 퀴어 페미니스트 댄서 커뮤니티로서의 안전한 공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루시아는 여성으로서, 그리고 퀴어로서 자유롭게 춤출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이에 대해 루시아는 루땐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며, 착취적이지 않은 구조와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