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퀴어영화제 리뷰 KQFF REVIEW


[데일리 뉴스] 모니카 트로이트 특별전 <퀴어들의 ‘지금’ ‘여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고민>


최현수 기자


<젠더너츠>는 1990년대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다양한 젠더교란자 인터뷰이들의 젠더 정체성을 주목한다. 모니카 트로이트 감독은 20년 후, <젠더너츠>에 출연했던 인터뷰이들을 다시 찾아가 <젠더레이션>에서 그들의 달라진 삶을 짚어본다. 두 영화는 자신이 트랜스젠더이거나 젠더교란자라면, 그리고 퀴어로서 나이듦에 관한 고민을 가졌다면 반드시 보아야 할 작품들이다.

두 영화의 간극은 시간에 따른 공간의 변화가 정치 및 경제 체제와 맞물려있으며, 퀴어들의 젠더 정체화에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1990년대의 샌프란시스코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을 포함한 많은 퀴어들의 안식처와 같은 공간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도 안전한 (물리적)공간이었으며, 자체적인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서로 연대와 지지를 나누는 네트워크로 기능했다. 반면 20년이 흐른 후, 트럼프 시대를 맞으며 샌프란시스코는 거대 자본의 직격탄을 맞는다. 트랜스젠더 및 젠더 이론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논의와 고민을 전개했던 이들이 커뮤니티의 해체를 겪으며 주변부로 밀려나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할 난관에 처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온라인 공간은 퀴어들에게 대안적인 안식처로서 그 가능성이 제고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안전하게 다른 퀴어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 활발히 이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대에 이르러서도 SNS의 형태로 건재하고 있는 온라인 공간은 다른 범주에 해당하는 퀴어 당사자들에 대한 몰이해로 왜곡된 지식과 오해가 넘치는 곳으로 변모되곤 한다. 자신의 무지를 기준으로 누군가를 비난하는 비극보다,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 모든 퀴어 당사자들의 정확한 앎을 향하는 큰 뒷받침이 될 것이다. 퀴어 당사자의 내부적인 퀴어 혐오는 또 다른 혐오의 양상을 고민하게 만든다.

<젠더레이션>에서도 나타나듯, 2010년대 이후의 샌프란시스코는 1990년대와 전혀 다른 곳이 되어있다. 이는 자본의 유입과 여러 이해관계들이 얽혀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빼놓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한국의 경우, 남성 동성애자들의 대표적인 게토(소수자 밀집 지역)인 종로3가는 익선동의 젠트리피케이션 영향으로 아웃팅의 위협을 받아 위축되었다. 또한 2020년 5월 초, 퀴어들의 안식처였던 이태원은 괴로운 비난을 견뎌야 했다. 일부 언론에서 퀴어들의 존재 자체를 코로나 확산의 원인으로 겨냥하며 ‘낙인찍기’에 열을 가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변한 일상에의 분노는 자연스레 ‘정당한 이유를 갖춘’ 퀴어 혐오로 표출되었고, 상권도 고스란히 영향을 받았다. 특성상 오프라인 대면 모임이 신뢰의 기반인 많은 대학교‧지역 기반의 퀴어 커뮤니티들은 와해의 수순을 밟아나가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트위터 등의 SNS가 다른 퀴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적 창구다. 퀴어들에게 있어 앞으로 살아갈 미래가 점점 막연해지는 것은 ‘지금’ ‘여기’의 문제다. 물리적 접촉이 거의 불가능한 시대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늙어갈까? 이는 단순히 기존의 공간으로부터 밀려나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가는 젠더와 삶의 문제로 직결된다.

이러한 지점에서 <젠더레이션>은 보다 확장된 가능성들을 제시한다. <젠더 너츠>에 등장한 다양한 인터뷰이들의 변화를 관찰하며 그들이 퀴어 당사자로서 논의하고 표현했던 여러 이론과 작품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반전운동과 환경운동, 트럭 운전자의 삶, 라디오 진행자의 삶 등을 보여주며 앞으로 늙어갈 퀴어들의 미래를 상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