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퀴어영화제 리뷰 KQFF REVIEW


[데일리 뉴스] 월드-퀴어 시네마 ⑤ [시간의 지층] <우연한 만남과 우주의 충돌>


유연수 기자단


한 사람의 삶은 하나의 우주다. 두 사람이 만날 때 우주는 충돌하고 변화한다. 월드-퀴어 시네마 다섯 번째 섹션, [시간의 지층]에서는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퀴어들이 조우하고 관계 맺으며 변화해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연한 만남의 순간, 우연한 만남 후 재회에 성공하거나 실패한 이들, 그리고 우연한 만남이 가능하게 하는 유대까지.

 

우연한 만남의 순간: <우리와 하늘 사이의 거리>

킵셀리에서 아테네로 돌아갈 차비 20유로를 빌려 달라는 말로 두 사람의 우연한 대화는 시작된다. 돈 빌리기, 반 갑 남은 담배와 대마, 종이접기로 만든 사랑앵무 팔기까지. 팽팽하게 밀고 당기며 장난스럽게 대화를 주고받는다. 담배를 나눠 피우며 입술은 닿을 듯 말 듯하고, 서로의 숨을 들이쉰다. 잠깐의 조우는 그들을 가깝게 하고, 서로를 꼭 껴안고서 바이크에 올라 아테네로 함께 향하게 한다. 완전한 타인이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두려움과 긴장감, 그럼에도 이어지는 농담과 웃음, 서로에 대한 신뢰의 포옹과 질주는 우연한 만남의 순간이 주는 모든 것들을 보여준다.

 

재회의 성공 혹은 실패: <오빌+밥>, <놓아주는 법>

우연한 만남 후의 재회는 더 이상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여기에는 관계를 이어 나갈 의지가 개입한다. 연락을 주고받고, 약속을 지키고,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서로에게 곁을 내어줄 때 관계는 이어지고, 그렇게 서로는 서로의 삶을 변화시킨다. <오빌+밥>에서는 우연한 만남이 48년 동안 이어진 오빌과 밥의 이야기가, <놓아주는 법>에서는 1년 후 같은 곳에서 만나자는 재회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사람의 하루가 그려진다.

오빌과 밥은 48년째 함께하고 있는 커플이다. 센트럴파크에서의 우연한 만남 이후 관계가 단절될 상황에 놓였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재회했고 함께했다. 흑인 빈민가 출신 오빌과 ‘백인 동네’ 출신 유대인 밥은 뉴욕에서 만났다. 사랑에 빠지는 건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할 때라고 혹자는 말한다. 이들은 인종적 배경도, 종교적 배경도 모두 너무나 다르지만, 다른 배경의 둘이 함께했기에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우주가 충돌하듯 그들의 삶은 서로에게 흡수되었고, 변화했다. 파트너의 좋은 점을 좋아하고, 서로에게 아주 오랫동안 헌신적인 파트너가 되어왔다. 영화에서는 그들이 함께 쌓아온 ‘시간의 지층’을 엿볼 수 있다. 각자의 성정체성과, 서로와, 사회와 맺어온 관계를 듣고 있으면 이들의 삶에 존경을 표하게 된다.

하지만 때때로 많은 재회는 실패한다.호텔 수영장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1년 후 같은 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재회하지 못한 <놓아주는 법> 속 주인공이 그렇다. 그는 상대와 보냈던 시간을 반추하면서 함께 했던 것들을 홀로 한다. 1년 전 함께 했던 때의 대화가 깔리며 함께 했을 때의 즐거움과 현재의 초조함과 절망, 슬픔이 대비된다. 1년 동안의 기대와 그 하루의 기억을 떠올렸던 시간들은 그렇게 무상해진다. 이제, 놓아줄 때다.

 

우연한 만남과 유대: <어떤 만남>

우리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이와 만나고, 그로부터 위로를 받거나 유대감을 공유하기도 한다. <어떤 만남> 속 아르셀리아와 그의 파트너의 가족 중 한 명이자 성정체성을 탐구 중인 훌리안이 그렇다. 아르셀리아의 파트너가 먼저 세상을 떠나며 영화는 시작된다. 40년간 함께 살았음에도 법적 보호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장례를 치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단절했던 파트너의 남동생을 찾아간다. 법적으로도, 가족에게도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아르셀리아는 싸늘한 태도 속에서 도움을 받고 장례를 치르지만, 아무도 그곳을 찾지 않는다. 어떤 커뮤니티로부터도 단절되어 고립된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때 훌리안이 그곳에 나타난다. 아주 잠깐의 만남으로 연결된 이들이지만, 퀴어 정체성, 배제되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감각이 이들을 묶어준다. 훌리안은 아르셀리아에게 온전한 위로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