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현수 기자단
난해한 작품 앞에서 관객은 쉽게 좌절하게 마련이다. 나름의 해설이 없는 상태에서 ‘알 수 없음’이 때로는 불쾌와 회피로 이어진다. 작품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심하게 되고 혹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작품을 수용하는 것만큼 좋은 독해는 없다. 난해한 작품들과 마주할 때의 자연스러운 반응들을 그대로 응시하는 것. 그것은 ‘퀴어’한 어떤 것들을 마주할 때 느끼는 미지(未知)와 무지(無知)에의 공포로부터 일별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퀴어와 영화, ‘퀴어’한 영화에 대한 최선의 독해법일 것이다.
실험단편선 [퀴프 : 익스텐디드 에디션]에서는 이처럼 퀴어하고 실험적인 영화 일곱 편을 선보인다. <버닝>에서는 두 여성의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담는다. 프랑스 작가 ‘앙토냉 아르토’의 드로잉과 연극을 경유하는 주인공의 발화는 죽음과 사랑에 대한 인터뷰,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 영상들과 함께 부유하는 타자로의 사랑이 곧 자신에게 가닿는 과정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타인을 찍는 듯 보이지만, 점점 거울을 통해 렌즈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으로 다가선다. 그것은 자신에게 향하는 끝없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퀴어들만큼 자기 자신을 모르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면 <당신은 진실되게 거짓을 말하네>는 그 반대편에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날카롭고 냉소적이다. 영화는 작가 데이비드 로비리아드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배우 러셀 토비의 목소리로 전하며, 그 틈새로 과거 동성애자들의 사랑과 비애, 에이즈 확산으로 위축되었던 커뮤니티와 감염인들을 조명한다. 특유의 운율감과 라임이 인상적인 데이비드 로비리아드의 작품이 다름 아닌 성소수자 당사자인 러셀 토비를 통해 경유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발화되는 이야기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타당성과 주체성을 획득해 더욱 효과적으로 울려퍼지기 때문이다. 아카이빙으로서의 의의를 가지는 영상 작업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어떤 부연설명이 없어도 과거의 혼란과 공포와 사랑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험단편선에서 가장 ‘친절한’ 영화라고 볼 수 있는 <사포 프로젝트>는 가장 감동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고대 시대부터 중세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에 존재하는 모든 레즈비언들을 애니메이션 작업으로 담았다.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로 하여금 레즈비언 시인인 사포의 시들이 결단코 사랑을 외치는 애니메이션 위로 내려앉아 감동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어느 시간대에서든 우리를 기억할 수 있을 거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물결치는 무지개의 파도 너머로, 스크린 바깥으로 확장되어 어디로든지 뻗어나갈 수 있는 사랑 그 자체다.
‘환상’이라는 키워드로 모을 수 있는 두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추방된 몽상가>와 <사일런트 히트>는 각각 다른 메시지를 환상적인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기 때문이다. <추방된 몽상가>의 경우 작품의 독해가 결말에 이르러야 완성될 수 있는데, 시종일관 바다와 파도의 이미지, 물과 종이, 불의 이미지들을 마치 단서처럼 보여주며 결국 현실 속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음을 말한다. <사일런트 히트>는 성게에게 찔려 관능적 섹슈얼리티의 신세계로 입문하는 주인공을 내세운다. 영화는 지금껏 금기시되거나 스스로 검열해왔던 섹스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탈출하는 탈출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레즈비언 플래그의 다섯 가지 색깔(자주, 연보라, 하양, 주황, 빨강)로 풍부한 이미지와 몸짓을 이끌어내는 조명과 빛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삭 줍는 사람들 그리고...>에 다다라 관객들은 충격에 빠질 것이다.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공간 속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다양한 몸들이 물결치고 춤추고 흔들리기 때문이다. 어지럽고 복잡한 애니메이션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추측에 불과할 테지만, 반대로 관객들은 새로운 상상으로 진입할 수 있다. ‘몸’이란 무엇이고 ‘정상’으로 간주되었던 몸들은 어떠한가?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념에 균열을 일으키는 <이삭 줍는 사람들 그리고...>는 충격과 공포의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퀴어’하다.
<29J3JCHF+P6>은 제목부터 불가해한 작품이다. 남극의 위도를 언어적으로 표현한 제목은 주인공 ‘타’의 집이기도 하다. 지도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제목과 달리 영화는 장소특정적 행위들을 담는다. 청년 인구와 노인 인구가 가장 많은 관악구 곳곳의 장소들은 그 자체로 특이한 지점을 가진다. 노후한 장소들을 배경으로 보이는 배우들의 춤과 몸짓은 지역의 공기와 불화하는 동시에 묘하게 조화롭다. 모순적으로 아름답다.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29J3JCHF+P6>는 교차되는 여러 지점들만으로도 주목해야하는 작품이다.
최현수 기자단
난해한 작품 앞에서 관객은 쉽게 좌절하게 마련이다. 나름의 해설이 없는 상태에서 ‘알 수 없음’이 때로는 불쾌와 회피로 이어진다. 작품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심하게 되고 혹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작품을 수용하는 것만큼 좋은 독해는 없다. 난해한 작품들과 마주할 때의 자연스러운 반응들을 그대로 응시하는 것. 그것은 ‘퀴어’한 어떤 것들을 마주할 때 느끼는 미지(未知)와 무지(無知)에의 공포로부터 일별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퀴어와 영화, ‘퀴어’한 영화에 대한 최선의 독해법일 것이다.
실험단편선 [퀴프 : 익스텐디드 에디션]에서는 이처럼 퀴어하고 실험적인 영화 일곱 편을 선보인다. <버닝>에서는 두 여성의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담는다. 프랑스 작가 ‘앙토냉 아르토’의 드로잉과 연극을 경유하는 주인공의 발화는 죽음과 사랑에 대한 인터뷰,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 영상들과 함께 부유하는 타자로의 사랑이 곧 자신에게 가닿는 과정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타인을 찍는 듯 보이지만, 점점 거울을 통해 렌즈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으로 다가선다. 그것은 자신에게 향하는 끝없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퀴어들만큼 자기 자신을 모르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면 <당신은 진실되게 거짓을 말하네>는 그 반대편에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날카롭고 냉소적이다. 영화는 작가 데이비드 로비리아드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배우 러셀 토비의 목소리로 전하며, 그 틈새로 과거 동성애자들의 사랑과 비애, 에이즈 확산으로 위축되었던 커뮤니티와 감염인들을 조명한다. 특유의 운율감과 라임이 인상적인 데이비드 로비리아드의 작품이 다름 아닌 성소수자 당사자인 러셀 토비를 통해 경유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발화되는 이야기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타당성과 주체성을 획득해 더욱 효과적으로 울려퍼지기 때문이다. 아카이빙으로서의 의의를 가지는 영상 작업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어떤 부연설명이 없어도 과거의 혼란과 공포와 사랑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험단편선에서 가장 ‘친절한’ 영화라고 볼 수 있는 <사포 프로젝트>는 가장 감동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고대 시대부터 중세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에 존재하는 모든 레즈비언들을 애니메이션 작업으로 담았다.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로 하여금 레즈비언 시인인 사포의 시들이 결단코 사랑을 외치는 애니메이션 위로 내려앉아 감동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어느 시간대에서든 우리를 기억할 수 있을 거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물결치는 무지개의 파도 너머로, 스크린 바깥으로 확장되어 어디로든지 뻗어나갈 수 있는 사랑 그 자체다.
‘환상’이라는 키워드로 모을 수 있는 두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추방된 몽상가>와 <사일런트 히트>는 각각 다른 메시지를 환상적인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기 때문이다. <추방된 몽상가>의 경우 작품의 독해가 결말에 이르러야 완성될 수 있는데, 시종일관 바다와 파도의 이미지, 물과 종이, 불의 이미지들을 마치 단서처럼 보여주며 결국 현실 속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음을 말한다. <사일런트 히트>는 성게에게 찔려 관능적 섹슈얼리티의 신세계로 입문하는 주인공을 내세운다. 영화는 지금껏 금기시되거나 스스로 검열해왔던 섹스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탈출하는 탈출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레즈비언 플래그의 다섯 가지 색깔(자주, 연보라, 하양, 주황, 빨강)로 풍부한 이미지와 몸짓을 이끌어내는 조명과 빛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삭 줍는 사람들 그리고...>에 다다라 관객들은 충격에 빠질 것이다.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공간 속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다양한 몸들이 물결치고 춤추고 흔들리기 때문이다. 어지럽고 복잡한 애니메이션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추측에 불과할 테지만, 반대로 관객들은 새로운 상상으로 진입할 수 있다. ‘몸’이란 무엇이고 ‘정상’으로 간주되었던 몸들은 어떠한가?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념에 균열을 일으키는 <이삭 줍는 사람들 그리고...>는 충격과 공포의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퀴어’하다.
<29J3JCHF+P6>은 제목부터 불가해한 작품이다. 남극의 위도를 언어적으로 표현한 제목은 주인공 ‘타’의 집이기도 하다. 지도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제목과 달리 영화는 장소특정적 행위들을 담는다. 청년 인구와 노인 인구가 가장 많은 관악구 곳곳의 장소들은 그 자체로 특이한 지점을 가진다. 노후한 장소들을 배경으로 보이는 배우들의 춤과 몸짓은 지역의 공기와 불화하는 동시에 묘하게 조화롭다. 모순적으로 아름답다.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29J3JCHF+P6>는 교차되는 여러 지점들만으로도 주목해야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