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퀴어영화제 리뷰 KQFF REVIEW


[리뷰-국내단편1]우리, 이제 다시, 함께

우리, 이제 다시, 함께

유영 기자단

올해 성인의 나이가 된 제20회 한국퀴어영화제는 굳건하게 지나온 시간들만큼이나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관객들을 다시 찾아왔다. 우리가 쉽게 직면하게 되는 상황들을 재치있게, 때론 담담하게 짧은 러닝타임 안에 꾹꾹 눌러 담은 단편들로 뿔뿔이 흩어진 우리들을 각자의 스크린 앞으로 모이게끔 한다. 특히 [국내단편1: What should I call you?]에서는 사회의 이분법적인 렌즈에서 벗어나 그 경계 속  얽힌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호명해야 하는지를 일상의 이야기들로 풀어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엄하늘 감독의 <피터팬의 꿈>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상범과 민하가 함께 첫 동해 여행을 가는 여정을 다룬 이야기다. 창가 너머로 새어 들어오는 따스한 햇빛과 숲을 지나 펼쳐지는 광활한 동해의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상범과 민하의 설렘이 저절로 느껴질 정도다. 감독은 마지막에 이르러 사라진 민하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다. 민하의 빈자리가 더욱더 크게 느껴지는 상범이겠지만, 네버랜드에 다녀온 웬디가 계속해서 피터팬을 떠올리는 것처럼 상범도 마음속의 민하(피터팬)을 떠올리며,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저 거센 파도같은 풍파에 겁내지 않고 당당히 한 발짝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박은경 감독의 <날씨가 좋아서>는 입대를 앞둔 지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지 주저하는 그런 채연을 옆에서 부추기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유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흔히들 한 번씩 겪은 짝사랑를 소재로 하고 있다 보니 보는 이들로 하여금 쉽게 유정과 채연의 감정에 동화되게 한다. 날씨가 정말 좋은 오늘이지만, 누군가에겐 이렇게 좋은 날이 자신의 감정을 더 슬프게 만들곤 한다. 영화는 줄곧 카메라를 통해 한 사람을 향한 누군가의 시선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시선에 담긴 ‘사랑’이라는 감정에 주목해서 본다면 더욱더 깊이 공감하며 볼 수 있을 것이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보이는 누군가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짝사랑의 쓰라림과 씁쓸함의 감정이 배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지혜 감독의 <사빈과 아나>는 네 자녀의 어머니이자, 아나의 애인인 사빈이 남편과 사별한 후, 영혼의 반쪽인 아나를 만나 35년을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의 일상을 담고 있다. 두 개로 나뉘어 있는 주방만큼이나 각자의 취향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를 완성한다는 사빈과 아나의 최측근의 인터뷰처럼 사빈은 아나에게, 아나는 사빈에게 죽음의 문턱에서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인생의 동반자다. 검은 머리가 파 뿌리로 변해갈 무렵 만난 35년의 사랑이지만 단지 하루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사빈과 아나가 서로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 스크린 너머로까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또한 한순간도 사빈과 아나를 따로 보여주지 않는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이들의 사랑을 더 깊게 공감하게 한다. 사빈의 자녀들과 아나 동생의 인터뷰는 사빈과 아나가 어떻게 지난 세월을 살아왔는지 지레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신승은 감독의 <마더 인 로>는 작년 서울프라이드영화제 작품상에 빛나는 영화로, 현서와 함께 현서의 자취방에서 동거하는 민진이 집에 홀로 있는 사이, 이 둘의 동거 사실을 몰랐던 현서의 어머니가 불쑥 집을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처음 만난 현서 어머니의 비수를 꽂는 질문들과 매서운 눈초리는 저절로 보는 이들의 숨통을 조여온다. 현서 어머니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진행되는 롤러코스터 레일같은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 민진이 이러한 상황을 잘 해결하기를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여기에 덧붙여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나오는 노래는 감독인 신승은 감독이 만든 노래로 민진의 심정을 아이러니하면서도 유쾌하게 담고 있어 영화의 여운을 남긴다.

정혜원 감독의 <보호자>는 어머니 명숙이 자신의 딸 희우가 큰 수술에 앞서 가족의 수술동의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희우의 애인인 가영을 통해 전해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수술을 앞에 두고도 태연한 딸의 모습에 명숙의 마음속엔 답답함만 한없이 쌓여간다. 영화의 영문 제목인 "Companion"은 사전적으로 {1) 친구 2) 반려자 3) 동반자}의 의미를 가진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세 가지 의미가 모두 해당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 명숙에게 가영은 자신의 딸 희우의 친구이자 반려자다. 그리고 희우와 가영이가 서로의 반려자가 되어주는 동시에, 명숙에게 희우와 가영은 명숙의 인생에 있어서 여생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의 위치에 놓여있다. 각자 다른 길을 걷더라도 함께 손을 부여잡고 명숙은 딸이 아프진 않은지 안부를 묻고, 희우는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게 끼니 거르지 않고 잘 챙겨 먹으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 모두가 힘겨운 이 시기에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애인이기 이전에 나의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이며, 내 친구의 어머니이자 시어머니 또는 장모이고, 내 딸이자 내 딸 친구의 애인이다. 자신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가 보여준 진실된 그 사람의 모습이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겠지만, 머지않아 우리의 사이가 다시 가까워질 것임을 알기에 감독들이 다섯 편의 단편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건네는 심심한 위로와 응원의 한 마디가 변화된 일상으로 멀어진 서로 간의 물리적 거리를 좁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