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퀴어영화제 리뷰 KQFF REVIEW


[데일리 뉴스] 국내특별작 <사랑, 그 무엇보다도 퀴어한>



최현수 기자단


미국을 향한 세계적인 주목을 앞두고 두려움에 떠는 이들은 다름 아닌 동성애자들이다. 거리의 부랑자와 성노동자를 비롯해 게이바를 단속하는 경찰들은 그들을 속출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체포는 곧 이름과 직업이 신문에 나 평생을 모욕 속에서 살다 죽거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1969년 스톤월 항쟁을 배경으로, 세계 박람회의 배후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자행된 소수자 학살의 역사가 있다. 동성애자들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용어인 '후르츠 케이크'가 제목으로 쓰인 <13 후르츠 케이크> 속 인물들은 경찰들의 단속을 피해 도망치던 중 의문의 지하실에서 신비로운 드랙퀸 ‘올랜도’로부터 기나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스톤월 항쟁 50주년을 맞이해 미국의 라마마 극장에서 초연된 <13 후르츠 케이크>는 문학, 예술, 과학,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역사적 인물들을 조명한다. 관객들은 앨런 튜링, 버지니아 울프, 차이코프스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안데르센, 거트루드 스타인 등 낯설지 않은 이름들과 잘 알려지지 않은 그들 삶의 ‘뒷모습’을 함께 마주하게 된다. 단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연인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해 가난 속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고, 세계 2차 대전에서 수천명의 목숨을 살렸음에도 문란한 동성애 혐의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했으며,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서로를 향해 입을 맞추었던 그들은 역사 속에 분명히 존재했던(그리고 너무나도 쉽게 지워졌던)성소수자들이다. <13 후르츠 케이크>는 그들의 비애와 사랑, 생애와 죽음을 무대 위로 길어올린다. 80분 간 펼쳐지는 아름다운 춤과 선율은 관객들에게 희열과 감동을 선사하며, 역사 속 성소수자들을 기억하고 추념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고와 사랑이다.

 

본 공연은 역사적 위인들을 조명함과 동시에 인간다운 삶과 평등을 질문한다. ‘올랜도’는 불멸의 삶을 살며 성소수자에게 자행되었던 수많은 폭력과 억압의 목격자이자 그 자체의 생동적 기록으로서 존재한다. 13가지 이야기는 게이바 지하실에 숨어든 청년 성소수자들의 삶과 닿게 되고, 그들은 더 이상 숨지 않고 거리로 나갈 용기와 힘을 얻는다.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의의를 비롯해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는 헌정작, 앞으로 살아나갈 성소수자들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게 한다는 점 등등, <13 후르츠 케이크>는 모두 설명해낼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유로 아름답게 빛나는 작품이다.

 

거리로 내쫓기거나 벽장 속에 갇혀 살기를 강요받는 성소수자들은 오래된 박해의 역사를 살아왔다. 어느 한 곳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문화권과 국가에서, 그것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 사회 역시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존재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 삶을 담보한 일이다. 퀴어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아낸 <13 후르츠 케이크>는 당사자성을 그려낸 작품임과 동시에, 기존의 예술 형식을 차용-변형-융합해 예술적 ‘불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 무엇보다도 퀴어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혐오와 차별 속에서도 서로를 구원해낼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이는 퀴어들의 역사로 현현되는 올랜도의 기나긴 사랑 시이자 <13 후르츠 케이크>가 건네는 따스한 입맞춤이다. 2021년 퀴어 역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이 가득하기를. 기꺼이 삶의 한 귀퉁이에 ‘후르츠 케이크’들을 위한 은신처를 내어주기를. 자유와 사랑과 평화가 퀴어함이 충만한 여름 속에서 다만 무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