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퀴어영화제 리뷰 KQFF REVIEW


[데일리 뉴스]창백하게 빛나는 홍루의 꿈

창백하게 빛나는 홍루의 꿈

임종하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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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홍루몽>은 세련되고 사치스러운 분위기의 유흥가와 상점들이 늘어선 홍루를 터전으로 하는 대만 게이들의 삶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영화 속 인물들이 빈번하게 마약을 복용하는 모습은 현재 대만 사회의 ‘마약’ 이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홍루에서 마약과 쾌락에 취하기도, 어긋난 사랑에 속앓이를 하기도 하고, 세상을 떠난 친구들을 애도하는 한편 새로운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밤이면 더 찬란하게 빛을 밝히는 홍루이지만, 젊은 그들의 몸 위로 쏟아지는 빛들은 어쩐지 공허하고 창백해 보인다. 이는 그들이 매일 밤 나누는 사랑과 우정이 낮이 되면 깨버리는 꿈 같이 언제든 흘러가 버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곳에서 매일 꿈을 꾼다.

‘조쉬’는 시골에서 올라와 타이베이 홍루에 위치한 ‘스톤’ 바에서 일하고 있다. 조쉬는 클럽과 바를 오가며 이제 막 시작된 대도시의 게이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한편 환락이 넘실거리는 홍루에서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린’은 남자친구 바오를 자살로 떠나보냈다. 그렇게 바오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린’ 앞에 조쉬가 나타났다. 린은 홍루의 삶에 들뜬 조쉬와 사소한 것에서 자꾸 어긋난다. 그럴 때마다 린은 자살한 남자친구 바오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촌뜨기였던 조쉬가 불빛에 홀린 나방처럼 타이베이의 환락으로 빠져드는 인물이라면, 린은 홍루의 꿈 밖에 있는 사람이다. 그의 전 남자친구 바오는 HIV를 비관해 자살했다. 그렇기에 린 또한 죽음에서 멀지 않은 사람으로서, 홍루의 쾌락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에서 살아간다. 홍루의 사람들이 쉬쉬하고 있지만 HIV는 그들에게 있어서 사형선고와도 같다. 많은 이들을 HIV로 잃어봤고, 심지어 HIV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살하는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그 비극과 가장 가까운 린은 속을 내비치지 않은 채 끝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진다. 영화가 조쉬의 이야기를 통해 타이베이의 환락과 쾌락을 이야기 했다면, 린을 통해서는 쾌락 이면의 순수한 사랑과 절망을 이야기 한다. 이렇듯 홍루의 꿈은 때에 따라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하다.

서로 마음을 나눌 듯 나누지 않는 어긋나 있는 린과 조쉬 사이에 ‘션’이 등장한다. 극 중 션은 홍루 안에서 가장 균형 잡힌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잘 나가는 사업가이자 모두가 부러워하는 탄탄한 몸과 잘생긴 얼굴을 가진 홍루의 유명인이다. 션은 홍루의 빛 아래서 환락에 젖어있지만, 조쉬처럼 자신을 잃지는 않는다. 그는 흔들리는 조쉬를 붙잡아 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션이 매일 밤 쏟아지는 홍루의 유혹 속에서도 조쉬와 달리 자신을 빼앗기지 않았던 데에는 자신이 안고 살아가는 절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션은 이렇게 홍루의 명과 암을 동시에 담은 사람으로, 찬란하지만 혼란스러운 홍루의 꿈속에서 조쉬와 함께 현실로 나간다.

영화의 마지막, 스톤 바에서 시작된 불이 번져 홍루의 거리에 화재가 난다. 그리고 불타는 홍루 위로 기적과 같은 눈이 내린다. 묘한 분위기로 홍루의 희비가 엇갈리는 이 장면은 홍루에 엉켜있던 욕망과 사랑을 한 차례 태우고 씻어내는 듯하다. 하지만 조쉬, 린, 션이 홍루를 앓듯이 머물렀다 떠나간 후에도, 홍루의 밤은 여전히 반짝거린다. 비록 도시가 자신을 삼키는 기분이 들지라도 그곳에는 그들의 젊음이 있고, 사랑이 있고, 꿈이 있으니까.

<홍루몽>은 6월 6일 20시 10분 2관, 6월 7일 24시 3관 퀴어미드나잇에서 관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