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퀴어영화제 리뷰 KQFF REVIEW


[리뷰-커런트 이슈: 우리에게 남은 공간]안전하고 편안하게 존재할 권리

안전하고 편안하게 존재할 권리


루 기자단

소수자를 위한 공간은 왜 필요한가? 소수자를 위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포괄성을 띨 수 있는 공간이란 무엇인가? 모두가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란 가능한 것인가? 소수자를 위한 공간에 대한 논의가 열띠다. 대개는 그 경계에 대한 것이다. 폐쇄성은 오랫동안 소수자를 위한, 특히 성소수자를 위한 공간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였다. 누가 들어올 수 있고, 누가 들어올 수 없는가? 누가 환영 받고, 누가 환영 받지 못하는가?

<우리에게 남은 공간>은 퀴어 여성을 위한 공간이 존속에 위협을 받거나 사라져가는 현상에 주목하여 현재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다섯 곳의 여성 공동체 이야기를 통해 이들이 어려움을 딛고 계속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를 짚어본다. 영화 말미에서도 언급되듯, 퀴어 여성들의 공간은 단순히 “데이트할 누군가를 찾기 위한” 곳만이 아니다. (물론 원하는 경우, 뜻이 맞는 파트너를 만날 수도 있다!) 영화 속 공동체들은 공통적으로 미국을 기반으로 서로 다른 배경과 정체성을 가진 여성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교류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모두 스스로를 돌아보고 드러내며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의사소통 하는 법을 함께 배워 나가는 공간으로써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한편 이들 공동체의 존속을 가장 저해하는 큰 요인은 혐오보다도 바로 돈이다. 안전한 물리적 공간을 확보하는 데에는 충분한 돈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비대칭적인 성별 임금 격차와 성차별 구조의 고착화로 퀴어 여성들은 안정적 수입원을 확보하고 유지하기가 남성들보다 훨씬 힘겹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공동체 중 하나는 여자대학교이다. 여자대학교는 과거 남성과 동등한 교육권을 보장받지 못한 여성들을 위해 여성만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의 설립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의 대학진학률이 유의미하게 차이 나지 않는 현재에도 모든 성차별이 뿌리 뽑히지는 못했다. 교육의 기회가 평등해졌으나, 교육의 질과 나아가 채용 과정에서의 성차별은 건재한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이 가부장적 문화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롭고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여성 연대를 꾸려 나갈 수 있는 공간으로써 여대의 필요성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 혹은 여성 퀴어를 위한 공간의 존재는 끊임없이 공격당한다. 이때 ‘여성 전용’ 공간의 구획은 외부로부터 그어지기도 하지만 내부적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올해 초 숙명여대의 트랜스 여성 학생의 입학을 두고 수많은 여성들이 이를 ‘침범’으로 여기며 이에 격렬히 반대한 사건은 여성 집단 내부의 논쟁으로써 가히 상징적이었다. 특정한 여성만을 허용하는 폐쇄적 공간과 여성들의 편안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공간은 대척점으로만 상상 가능한 것일까? 공간의 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와도 괜찮은’ 여성의 경계를 짓기 시작한다면 결국 어떤 여성들의 목소리는 경계 밖으로 밀려나고 만다. <우리에게 남은 공간>과 같이, 혹은 여자대학교 학생들과 같이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는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활동적이고, 안정적이며, 교육받은 사람들로 한정되기 쉽다는 사실을 돌아보자. 더 많은 여성들을 포함하여 나아갈 수 있는 공동체란 무엇일지 결코 고민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레즈비언 허스토리 아카이브의 한 활동가의 말에서 참조점을 얻어본다. “이곳은 레즈비언만 허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어떠한 레즈비언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예요.” 몸담을 수 있는 적절한공간의 여부는 곧 생존권의 문제와 직결되기도 한다. 영화에서 던지는 문제의식은 지금 우리에게 다시 질문이 되어 돌아온다. 어떻게 하면 퀴어, 그리고 여성에게 안전하면서도 구성원 모두가 환영 받고 편안한 공동체를 꾸릴 수 있을까? 이를 위한 권리는 어떻게 외쳐져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