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퀴어영화제 리뷰 KQFF REVIEW


[리뷰-국내단편2](목)소리를 기억하는 방식, 점점 더 주목하며

(목)소리를 기억하는 방식, 점점 더 주목하며

켄 기자단

(목)소리는 인간이 내는 신호 중 하나다. 기척을 통해 어떤 존재가 이곳에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소리를 지우거나, 소리 내지 못하게 막는 사회 속에서 퀴어가 (목)소리를 내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는 (목)소리가 이번 제20회 한국퀴어영화제 [국내단편2: 점점 더 크게 세게, 크레센도]의 핵심 단어로 꼽힌 것이다. 단편 영화 5편을 통해 크고 시끄러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퀴어의 (목)소리에 주목함으로써 그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다.

한은선 감독의 <목격담>은 소은이 교내 레즈비언 커플 관계에서 가해지는 폭력을 목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영화 속 학교라는 사회는 목격담을 전달받은 후에도 동성 간의 가해-피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피해자인 주하의 체면을 생각하고 사건의 당위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확실한 진상을 규명하길 거부한다.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밤거리에 선 소은과 주하의 대화는 머리 위로 지나가는 도시 지상철에 묻힌다.

이유진 감독의 <굿마더>는 성 소수자와 양육자 관계에서 일어나는 충돌을 다룬다. 수민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했다. 레즈비언인 지수는 외국에서 동성혼을 올렸다. 또 수민은 올바른 정답을 가르치는 교사다. 지수는 로펌 소속 법률가 대신 소수자를 위한 인권 단체 법조 활동가다.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지수를 이해하고 납득하는 것처럼 대하던 수민은 끝내 망신스럽다는 속마음을 토로한다. 수민이 숨겨둔 속마음을 터뜨린 후, 이른 아침 쪽지를 발견할 때까지 지수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정월 감독의 <불명예>는 육군 인권본부중앙수사단 소속 조사관이 군내 동성애 및 동성 간 성행위 ‘범죄’를 수색하기 위해 류 중위를 찾아와 압박 수사하는 상황으로 이뤄진다. 범인 색출이라는 명목 하에 류 중위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조사관은 군인으로서의 명예로 류 중위를 협박하고, 류 중위는 조사관의 압박 수사 도중에 걸려온 장 중위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한다. 불명예한 처우가 기약된 장중위가 류 중위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영원한 공백으로 남은 음소거가 조사관의 협박보다 더욱 강렬하게 남아 있다.

신시아 감독의 <춤을 추고 있어>에서는 대화 대신 몸짓과 스텝을 맞추며 서로의 무대를 완성해가는 연재와 수기가 등장한다. 크고 작은 트러블이 일어난 후에도 서로가 있을 연습실로 향하는 연재와 수기의 관계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춤사위가 더 어울린다. 하지만 가끔 자신의 무게에 못 이길 때가 종종 있다. 그 답답함을 해소하는 것이 바로 리프트다. 어쩌면 수기의 무거운 기억을 가뿐히 들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연재일 수도 있다. 멈춰 있던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선율, 연재와 수기가 서로를 향해 뛰기 시작하자 템포가 빨라지는 음악 등 연재와 수기처럼 영화의 연출 역시 말보다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조혜린 감독의 <여름바다에 뜨는 가벼운 것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한 주현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묵묵한 혜리가 나온다. 그 둘은 정반대의 성격처럼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진중하고 무거운 속내를 가졌다는 점은 비슷하다. 어색하고 낯선 거리감이 있던 둘이 바다 속에서 서로를 마주볼 때, 이전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입을 맞추는 장면은 대화 없이 못한 말만 쌓아둔 두 사람이 한결 가볍게 떠다니는 듯이 연출해 오랜 여운이 남는다.

[국내단편2: 점점 더 크게 세게, 크레센도]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와 말이 필요없는 듯한 이야기가 교차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사회에 가로막힌 퀴어의 (목)소리가 있다. 우리는 이번 한국퀴어영화제 국내단편2를 통해 퀴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