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단편 1, 2 GV
유영 기자단, 켄 기자단

온라인 플랫폼 ‘퍼플레이(Purplay)’를 통해 제20회 한국퀴어영화제의 상영작들이 관객들을 찾아가고 있는 가운데, 26일 저녁 실시간 라이브 방송으로 [국내단편 1 What should I call you?]과 [국내단편 2 점점 더 크게 세게, 크레센도]의 감독과 배우를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너의 이름은 000이야
국내단편1 섹션 네 편의 영화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끼니, 밥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는 점이다. <보호자>에서 희우가 엄마 명숙에게 같이 밥 먹는 사람이라는 ‘식구(食口)’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처럼 특히 한국인에게 있어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그 사람과 끈끈한 유대감을 재확인하는 과정이자 서로의 온기를 온전히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보호자>의 희우가 명숙에게 수술 후 첫 식사는 엄마랑 할 것이라며 자신의 애인인 가영과 먹는 밥이 입에 잘 맞는다고 말한다. 이 대목은 ‘밥’이라는 것이 엄마인 명숙의 걱정을 덜기 위한 것인 동시에 엄마의 보호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과 살고자 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피터팬의 꿈>에서 상범과 민하가 한바탕 감정싸움을 한 후, 조그마한 탁자에 둘러앉아 100일 기념 케이크와 컵라면을 나눠 먹는 장면은 두 사람이 서로의 감정을 재확인하고, 비로소 성인이 되는 일종의 성인식 같은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 <마더 인 로>에서는 쿠키 영상을 통해 민진과 현서가 마더 인 로(장모, 시어머니)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같이 먹는다.이 장면은 민진이 한 가족의 식구로서 인정받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빈과 아나> 경우, 두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같은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각자가 먹고 싶은 것 을 먹는다. 이처럼 식구라는 것이 같은 밥을 먹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같이 밥을 먹는다는 행위 자체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날씨가 좋아서>에서 유정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인 밥집(식당)은 식구가 되어줄 이를 찾는 유정의 마음을 대변하는 공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What should I call you?(내가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하지?) 호명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선 긋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는 나에게 어떤 사람(관계)인가? 국내단편1의 테마 속 질문에 대한 답변이 네 편의 단편영화 안에 녹아 들어있다. <마더 인 로>에서 딸인 현서의 집에 찾아온 형숙은 민진에게 있어서 내 친구의 어머니이자, 내 애인의 어머니이고, 나의 시어머니이자 장모님이다. 그리고 <피터팬의 꿈>의 두 주인공 상범과 민하는 절친한 친구 사이이자, 서로를 사랑하는 애인이다. <날씨가 좋아서>에서 유정에게 채연은 내 친구이자 나의 짝사랑 상대이며 <보호자>에서 엄마 명숙에게 가영은 내 딸의 애인이지만, 나를 대신할 보호자이다. 하지만 <사빈과 아나>의 사빈, 아나의 말처럼 우리는 서로의 관계와 사이를 명확하게 할 필요는 없다. 어떠한 공식적인 규정(결혼) 없이 35년을 함께 살아온 사빈과 아나의 삶이 그 증거다. 우리는 서로를 구분하는 선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이렇게 자유로운데, 우리 사이를 굳이 어떠한 한 단어, 한 문장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을까? 위의 네 편의 영화들처럼 우리네의 관계는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줄여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오히려 그 단어, 문장에 우리들의 관계가 갇히게 될 뿐이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만 있다면 어떻게 호명되든 상관없는 것이다.
퀴어한 존재들의 (목)소리, 연출부터 비하인드까지 모아모아
<목격담>의 한은선 감독은 동성 간 성폭행 범죄가 이성 간 범죄와 무게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주제를 드러내기에 앞서 구성‧연출 과정에 대한 고민이 무척 많았던 한은선 감독은 가해-피해를 직접 다루는 것보다 목격자를 통한 간접 시점을 적용했다. 사건의 내밀한 부분을 조명하지 않고도 동성 간 성범죄에 대한 고찰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조혜린 감독은 커밍아웃 후 퀴어 당사자와 법적 가족이 갈등하는 모습을 그린 <굿마더>를 연출할 당시 퀴어 뿐만 아니라 비혼주의 헤테로 여성도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다양한 관점에서 <굿마더>의 세밀한 감정선과 복잡한 상황에 이입할 수 있는 까닭은 조혜린 감독이 실제 현장을 오가며 시나리오의 디테일한 틀을 잡았기 때문이다. 성 소수자 부모 모임, 퀴어문화축제 주점 등 <굿마더> 등장인물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경험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신시아 감독은 <춤을 추고 있어> 속 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주연 배우들 모두 무용 전공자였으며, 안무 구성을 담당한 안무 감독과 협업해 영화 속 현대무용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중 발레, 왈츠, 탱고 등 성 역할이 정해진 춤이 아닌 현대무용을 선택한 이유에 주목할 만하다. 현대무용은 이 외의 장르에 비해 고정된 성 역할의 이미지가 옅다. 다양한 가능성과 표현 기법을 투영할 수 있다. 여기에 ‘리프트’ 동작을 추가함으로써 안무와 관계의 완성을 향해 다가가는 이야기가 된다.
<여름바다에 뜨는 가벼운 것들>의 이유진 감독은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인물이 자연 앞에서 가장 솔직한 상태로 가까워지는 관계의 진전을 표현하는 데 주목했다. 담백한 인상과 또렷한 이목구비 같은 외형은 물론, 내밀한 고민이 많아 보이는 상대에게 솔직한 모습 그대로 다가가는 인물의 태도 등 성격까지 다르게 캐릭터를 설정한 것이 그 이유다. 서로 다른 모습에 끌린 인물들이 광활하고 푸른 바다 속으로 들어가 합일(合一)되는 듯한 연출은 캐릭터의 행복한 미래를 기대해봄직한 결말이기도 하다.
퀴어한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고 점점 더 커지도록 주목한다는 것은 국내단편2의 핵심 주제이다. 이는 GV에서 다뤄지지 않은 <불명예>에서도 볼 수 있다. <불명예>는 퀴어 당사자의 입을 막으며 아웃팅을 강요하는 등 강압적으로 수사하는 군대 심문 상황을 다뤘다는 점에서 <목격담> 속 학교와 비슷하다. 학교는 군대와 마찬가지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언제든 억압당할 수 있는 이중적 공간이다. 교복과 군복처럼 동일한 옷을 입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집단 내에서 퀴어 당사자의 (목)소리가 제지당하고 지워지는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국내 단편 1, 2 GV
유영 기자단, 켄 기자단
온라인 플랫폼 ‘퍼플레이(Purplay)’를 통해 제20회 한국퀴어영화제의 상영작들이 관객들을 찾아가고 있는 가운데, 26일 저녁 실시간 라이브 방송으로 [국내단편 1 What should I call you?]과 [국내단편 2 점점 더 크게 세게, 크레센도]의 감독과 배우를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너의 이름은 000이야
국내단편1 섹션 네 편의 영화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끼니, 밥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는 점이다. <보호자>에서 희우가 엄마 명숙에게 같이 밥 먹는 사람이라는 ‘식구(食口)’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처럼 특히 한국인에게 있어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그 사람과 끈끈한 유대감을 재확인하는 과정이자 서로의 온기를 온전히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보호자>의 희우가 명숙에게 수술 후 첫 식사는 엄마랑 할 것이라며 자신의 애인인 가영과 먹는 밥이 입에 잘 맞는다고 말한다. 이 대목은 ‘밥’이라는 것이 엄마인 명숙의 걱정을 덜기 위한 것인 동시에 엄마의 보호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과 살고자 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피터팬의 꿈>에서 상범과 민하가 한바탕 감정싸움을 한 후, 조그마한 탁자에 둘러앉아 100일 기념 케이크와 컵라면을 나눠 먹는 장면은 두 사람이 서로의 감정을 재확인하고, 비로소 성인이 되는 일종의 성인식 같은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 <마더 인 로>에서는 쿠키 영상을 통해 민진과 현서가 마더 인 로(장모, 시어머니)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같이 먹는다.이 장면은 민진이 한 가족의 식구로서 인정받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빈과 아나> 경우, 두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같은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각자가 먹고 싶은 것 을 먹는다. 이처럼 식구라는 것이 같은 밥을 먹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같이 밥을 먹는다는 행위 자체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날씨가 좋아서>에서 유정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인 밥집(식당)은 식구가 되어줄 이를 찾는 유정의 마음을 대변하는 공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What should I call you?(내가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하지?) 호명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선 긋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는 나에게 어떤 사람(관계)인가? 국내단편1의 테마 속 질문에 대한 답변이 네 편의 단편영화 안에 녹아 들어있다. <마더 인 로>에서 딸인 현서의 집에 찾아온 형숙은 민진에게 있어서 내 친구의 어머니이자, 내 애인의 어머니이고, 나의 시어머니이자 장모님이다. 그리고 <피터팬의 꿈>의 두 주인공 상범과 민하는 절친한 친구 사이이자, 서로를 사랑하는 애인이다. <날씨가 좋아서>에서 유정에게 채연은 내 친구이자 나의 짝사랑 상대이며 <보호자>에서 엄마 명숙에게 가영은 내 딸의 애인이지만, 나를 대신할 보호자이다. 하지만 <사빈과 아나>의 사빈, 아나의 말처럼 우리는 서로의 관계와 사이를 명확하게 할 필요는 없다. 어떠한 공식적인 규정(결혼) 없이 35년을 함께 살아온 사빈과 아나의 삶이 그 증거다. 우리는 서로를 구분하는 선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이렇게 자유로운데, 우리 사이를 굳이 어떠한 한 단어, 한 문장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을까? 위의 네 편의 영화들처럼 우리네의 관계는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줄여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오히려 그 단어, 문장에 우리들의 관계가 갇히게 될 뿐이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만 있다면 어떻게 호명되든 상관없는 것이다.
퀴어한 존재들의 (목)소리, 연출부터 비하인드까지 모아모아
<목격담>의 한은선 감독은 동성 간 성폭행 범죄가 이성 간 범죄와 무게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주제를 드러내기에 앞서 구성‧연출 과정에 대한 고민이 무척 많았던 한은선 감독은 가해-피해를 직접 다루는 것보다 목격자를 통한 간접 시점을 적용했다. 사건의 내밀한 부분을 조명하지 않고도 동성 간 성범죄에 대한 고찰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조혜린 감독은 커밍아웃 후 퀴어 당사자와 법적 가족이 갈등하는 모습을 그린 <굿마더>를 연출할 당시 퀴어 뿐만 아니라 비혼주의 헤테로 여성도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다양한 관점에서 <굿마더>의 세밀한 감정선과 복잡한 상황에 이입할 수 있는 까닭은 조혜린 감독이 실제 현장을 오가며 시나리오의 디테일한 틀을 잡았기 때문이다. 성 소수자 부모 모임, 퀴어문화축제 주점 등 <굿마더> 등장인물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경험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신시아 감독은 <춤을 추고 있어> 속 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주연 배우들 모두 무용 전공자였으며, 안무 구성을 담당한 안무 감독과 협업해 영화 속 현대무용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중 발레, 왈츠, 탱고 등 성 역할이 정해진 춤이 아닌 현대무용을 선택한 이유에 주목할 만하다. 현대무용은 이 외의 장르에 비해 고정된 성 역할의 이미지가 옅다. 다양한 가능성과 표현 기법을 투영할 수 있다. 여기에 ‘리프트’ 동작을 추가함으로써 안무와 관계의 완성을 향해 다가가는 이야기가 된다.
<여름바다에 뜨는 가벼운 것들>의 이유진 감독은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인물이 자연 앞에서 가장 솔직한 상태로 가까워지는 관계의 진전을 표현하는 데 주목했다. 담백한 인상과 또렷한 이목구비 같은 외형은 물론, 내밀한 고민이 많아 보이는 상대에게 솔직한 모습 그대로 다가가는 인물의 태도 등 성격까지 다르게 캐릭터를 설정한 것이 그 이유다. 서로 다른 모습에 끌린 인물들이 광활하고 푸른 바다 속으로 들어가 합일(合一)되는 듯한 연출은 캐릭터의 행복한 미래를 기대해봄직한 결말이기도 하다.
퀴어한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고 점점 더 커지도록 주목한다는 것은 국내단편2의 핵심 주제이다. 이는 GV에서 다뤄지지 않은 <불명예>에서도 볼 수 있다. <불명예>는 퀴어 당사자의 입을 막으며 아웃팅을 강요하는 등 강압적으로 수사하는 군대 심문 상황을 다뤘다는 점에서 <목격담> 속 학교와 비슷하다. 학교는 군대와 마찬가지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언제든 억압당할 수 있는 이중적 공간이다. 교복과 군복처럼 동일한 옷을 입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집단 내에서 퀴어 당사자의 (목)소리가 제지당하고 지워지는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