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퀴어영화제 리뷰 KQFF REVIEW


[데일리 뉴스]암스테르담 퀴어 퍼레이드: 해방의 발자취를 따라서

암스테르담 퀴어 퍼레이드: 해방의 발자취를 따라서

위정연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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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퀴어 퍼레이드>는 네덜란드 퀴어의 인권이 지난 200여년간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전문가와 활동가 들을 통해 알아보는 본격 역사 탐구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공간'에서 시작해서 ‘공간’으로 끝난다. 그 중에 서도 작품의 주축이 되는 ‘호모모뉴먼트(Homomonument)’라는 곳은 그동안 사회로부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퀴 어들을 추모하기 위해 1987년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이 기념비는 각 꼭지점이 과거, 현재, 미 래를 뜻한다. 이 곳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묵념을 하기도 하고, 축제 날이 되면 성대한 파티를 열어 모두가 즐길 수 있 는 장이 된다.


네덜란드에서 트 랜스젠더 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아나는 원래 브라질에서 나고자랐다. 그는 18살 때 본인을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정체화했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한 브라질에 적응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네덜란드로 이민을 왔다. 또 다른 활동가 쉬반 역시 아나와 비슷한 이유로 자신의 나라 시리아에서 네덜란드로 건너 왔다. 이처럼 네덜란드는 퀴어 인권에 관해서는 선진국 중의 선진국으로 유명하다. 전세계 처음으로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허용이 된 나라이며 국민의 93%가 퀴어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퀴어들이 살기 좋은 나라던 것은 아니다. 지금이 있기까지 사회 억압에 맞선 격렬한 해방 운동이 수없이 있 어왔다. 그런 과정을 이야기 하기 위해 <암스테르담 퀴어 퍼레이드>는 시계를 거꾸로 돌려 중세 시대에서부터 시작 한다.


암흑시대(dark ages)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중세 시대에 동성애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악 중 하나다. 동성 간의 애정 행각이 발각될 시 사형 재판 으로 까지 이어지는 일이 공공연했다. 시간이 흘러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나치는 국력을 강화시키는 데에 온 힘 을 쏟았고, 동성애자들의 존재를 민족 재생산의 위협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수용소(concentration camp)에 유대인, 범죄자, 퀴어를 한 데 모아 집단 살인을 강행했고, 거의 대부분이 살아남지 못했다. ‘호모모뉴먼트’가 지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제2차 세계대전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토록 지난한 억압 시절에도 레즈비언에 대한 기록은 거의 등장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간 여성은 욕망을 하는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만 여겨졌고, 그들이 감히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사랑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남성 정치인들) 예상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퀴어 역사 속에서 철저히 지워졌던 것이라고 역사가 주디스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해방의 물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퀴어 인권 보호를 위한 단체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진다. COC(Center for Culture and Leisure)는 그중에서도 가장 향력이 있는 단체다. 퀴어들의 사교 모임과 잡지 출판이 COC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COC는 라디오나 TV 등 미디어에 직접 등장해서 사람들에게 퀴어의 존재를 알리는 것에 특히 힘썼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페미니즘의 물결은 퀴어 인권 운동에 ‘터닝 포인트’가 될 정도로 긍정적인 향을 끼쳤다. 사회 전반에 여성 해방 운동이 다루어졌고 사회적 약자라는 맥락에서 퀴어의 인권 운동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퀴어들은 길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여 싸웠다. 암스테르담은 점차 퀴어를 위한 공간으로서 전세계적인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호모모뉴먼트’의 각 꼭지점이 의미하는 ‘과거’, ‘현재’, ‘미래’ 처럼 이 작품 역시 네덜란드 퀴어의 삶을 중심으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상적인 것은, 상대적으로 인권 운동 면에서 많은 것을 이룬 네덜란드임에도 각 분야의 인권 활동가들이 여전히 싸워 나가야할 지점이 많다고 지적한 점이다. 그들은 진정한 ‘평등’ 은 아직 멀었 으며 여전히 학교나 회사에서 따돌림으로 고통받고 있는 퀴어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가는 그들의 태도가 결국 지금의 네덜란드를 만들지 않았을까.


6월 6일 GV에서 감독 ‘세바스티안 케스’는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한국의 에너지에 깊이 감명받았다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어서 그는 네덜란드 퀴어 인권이 아직 완벽하게 평등을 이루지는 못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 조한다. 법적인 면에선 타국보다 진보적인 것을 인정하지만 그만큼 폭력과 백래시가 항상 뒤따랐다고 지적한다. 또 한, 감독 본인이 느끼는 역사 속 퀴어 인권의 터닝포인트가 무엇이냐는 한 관객의 질문에 그는 80년대부터 시작된 동 혼 법제화 운동이었다고 대답했다. 결국 법제화는 2001년에 되었지만, 몇십년 전부터 꾸준한 운동이 있어왔기에 가능했던 결과인 것이다.

암스테르담 퀴어 퍼레이드는 6월 9일 11시 30분 3관에서 관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