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퀴어영화제 리뷰 KQFF REVIEW


[데일리 뉴스] HIV/에이즈를 끝낼 여성들

KQFF
2019-06-09
조회수 1159

HIV/에이즈를 끝낼 여성들

오윤주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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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포비아들의 전형적인 패턴이 있다. 게이를 ‘에이즈 보균자’로 모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에이즈라고 하면 종종 게이만의 병인 것처럼 취급받곤 한다. HIV/에이즈 감염자 혹은 보균자와 콘돔 없이 성관계를 하면 옮을 수 있다. 그러므로 HIV/에이즈를 예방하는 방법은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성병 검사를 받고 콘돔을 착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게이 혐오 이면에서 혐오조차 받지 못한 채 지워져버린 존재가 있다. 바로 여성들이다.

<감염된 여자들>은 HIV/에이즈 혐오와 여성 혐오의 두 가지 전선에서 맞서 싸운 일곱 명의 여성 운동가들을 조명한다. 에이즈는 단지 게이만 걸리는 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HIV/에이즈 감염 인구의 절반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1992년까지만 해도 미국의 CDC(질병관리본부)는 에이즈를 백인 남성이 걸리는 병이라고 정의했고, 자연히 여성은 배제되었다. 여성의 존재 자체를 지우는 방식은 감염된 여성들을 침묵시켰을 뿐 아니라 고요히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HIV/에이즈 감염 여성은 진단도, 치료도 받을 수 없었다. 에이즈의 정의(CDC definition)를 바꾸기 위해 투쟁했던 액트업의 카트리나는 결국 시기를 놓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의 말년에 한 리포터가 그들(CDC)이 결국 에이즈의 정의를 바꾸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이 바꾸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들은 에이즈의 정의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바꿨죠.”

영화는 미국과 아프리카를 오가며 여성의 HIV/에이즈 치료받을 권리를 위해 끝까지 투쟁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영화가 주목하는 지점은 첫째, 여성을 향한 차별적 구조이며 둘째, 제 1세계 여성과 제 3세계 여성을 가르는 인종과 계급과 자본의 문제이다. 잔느는 에이즈에 대한 아무런 대비책이나 조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아프리카 부룬디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강제적으로 아이를 낙태당했고, 알지도 못한 채 포궁을 적출당했다. 서구의 국가들에서는 1995년부터 에이즈 치료제 접근이 가능했지만, 아프리카는 2003년까지 접근 권리가 없었다. 문제의식을 가진 그녀는 목숨을 걸고 르완다까지 차로 이동해 에이즈 약을 공수해 왔다. 국경까지 넘나든 잔느 덕분에 부룬디는 전쟁과 위기 속에서도 약의 기금을 마련한 첫 번째 국가가 되었다.

감염된 여성을 향한 사회적 낙인은 여성혐오와 교차되어 이중, 삼중의 억압을 행사한다. 지나는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출신으로, 어릴 적 오랜 기간 성추행을 당해온 성폭력 피해자다. 그녀는 데이트 폭력을 당하면서도 학대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마약과 위험한 성적 환경에 노출되거나 노숙 생활로 내몰리는 등 사회적 안전망 바깥에서 착취당해왔다. 교차성을 지적하는 나이나에 따르면 HIV 감염 여성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유색 인종인 경우가 많으며, HIV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출신인 조이스 역시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보수적인 흑인 교회 커뮤니티에서 낙인찍히고 추방당했다. 그러나 그녀는 굴하지 않고 거리로 나가 강의를 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무료로 에이즈 검사를 해주는 센터를 열어 계속해서 봉사한다. 길거리의 여성 노숙자를 찾아가 무료 검사를 해주고 보호시설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 사는 모로레이크 역시 청소년을 위한 HIV/에이즈 캠프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감염된 여성들이 타인을 돕기 위해 나서는 이유는 명확하다. 연대하기 위해서다.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저의 아젠다는 연대입니다.” 모로레이크의 말처럼, 병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사회적 낙인과 배제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수적이다. 지금껏 지워지고 묵인되어 왔던 여성 HIV 감염자들의 이야기를 1시간 넘게 스크린을 통해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우리는 그들과 연대하고 있는 셈이다.

6월 7일 진행된 Q톡은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의료 인류학자이자 HIV 인권활동가 서보경 교수와 함께했다. 서보경 교수는 제약회사, 의사, 과학자들이 약을 개발할 때 언제나 성인 남성의 몸을 표준으로 약을 만든다는 사실과 제3세계 여성의 경우 이중의 소외를 당한다고 지적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제약회사들은 미국과 유럽 등지의 중산층 백인을 위한 약을 개발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보경 교수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서 “에이즈-동성애자-항문섹스”를 연결시키는 호모포비아들의 선전을 꼽았다. 이러한 선전은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들이 스스로 에이즈 환자가 될 수 있음을 상상조차 못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다. 지금 우리는 에이즈 치료 30년 역사에서 2번째 혁명적 시기를 살고 있다. 첫 번째 혁명은 에이즈를 만성 질환화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혁명은 U=U, 즉 검출되지 않으면 전파되지 않는다는 연구다. 지속적으로 HIV 치료를 받고 있는 감염인은 몸 안의 바이러스 수치가 너무 낮아져 성관계를 통해 남을 감염시킬 수 없다는 연구 결과가 2017년 명확히 입증되었다. 따라서 더 많이 검사 받고, 본인의 HIV 감염 사실을 알고, 치료받는 것이 최선의 예방 정책이다. 끝으로 서보경 교수는 영화에 소개된 Positive Women’s Network를 이상적인 여성 감염자 연대로 본다. 그들은 모든 젠더의 여성을 포함하며, 이주자든 난민이든 여성 안에서조차 소외된 이들을 끌어안는다.

<감염된 여자들>은 HIV/에이즈 감염 여성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여러 층위의 질문을 던진다. 감염 여성의 재생산권에 관한 논의는 지금껏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모로레이크는 아이를 가지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고, 엄마로부터 아이로의 감염을 막는 조치와 제왕절개를 통해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 데에 성공했다. 단지 HIV 감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임신과 출산의 권리를 포기해야 할까? 혹여나 1%의 가능성으로 감염된 아이가 태어났다 해도, 그녀를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여성의 재생산권은 누가 누구에게 주는 것일까? 게이가 HIV/에이즈 논의의 문을 열었다면, 이 여성들은 그 문을 닫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은 우리 모두가 함께했을 때 닫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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